일본 프로야구에 최초로 진출한 한국인 포수 백인천
백인천 선수 기억하시죠?
1982년에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을때 선수겸 감독으로 MBC 청룡에 입단하여 수준높은 타격기술을 팬들에게 선보이며 "프로에서의 타격은 이런것이다"는 것을 보여준 장본인이아마도 백인천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의 팬들은 아마도 백인천이라는 이름을 과거의 감독 또는 야구계의 원로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올드팬들은 그가 프로야구에 남긴 엄청난 임팩트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백인천 선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KBO 유일한 4할 타자라는 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타율 0.412로 타격왕을 차지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또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1975년 타격왕을 차지하며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모두에서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사실 1960년, 1970년대의 한국과 일본의 야구수준의 격차는 지금의 격차와는 다른 상당한 차이가 있어기 때문에 그의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성공은 커다란 이슈가 되었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4할 타율과 한국, 일본 프로야구 타격왕이라는 기록 이외에 그가 야구사에 남긴 또 하나의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최초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라는 기록입니다. 백인천은 1962년 경동고등학교를 졸업 후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재일교포선수들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꽤나 있었지만 한국에서 진출한 선수는 백인천이 최초입니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아직 프로야구가 없어서 프로라는 개념도 없는 시대였고 또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국내도 아닌 해외에 진출한다는 사실 만으로 상당한 흥미거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입단 당시에 백인천 선수의 포지션은 포수였다고 합니다. 경동고등학교 시절에 한국 내 고교 최고의 포수였기 때문에 포수로 스카우트 되었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국가의 프로야구에서 외국인선수를 포수로 계약한다는 것은 흔치않은 경우로 실제로 1963년 기사를 확인해 보면 백인천은 포수로 1군에 데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백인천 선수는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주로 활동하였지만 초창기 포지션이 포수였다는 것은 조금은 의외의 사실입니다.백인천선수의 이러한 포지션 변경은 그가 탁월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습니다.
그는 고교시절 야구와 함께 스피트 스케이팅도 같이 했었는데 동계체전 1500m에서 우승했던 선수이기도 했었습니다. 한 선수가 초등학교에서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 2개의 종목(야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모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탁월한 운동능력이 포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 변경에도 불구하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의 표는 백인천선수의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기록입니다. 백인천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1831안타, 통산 0.278을 기록 하였습니다. 특히 1975년에는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르며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국계 선수가 타격왕을 차지한 것은 장훈선수에 이어 2번째라고 합니다. 특히 이런 백인천선수의 성과는 최초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라는 기록과 포수에서 수비 포지션 변경을 잘 극복한 후 달성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