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해서 신인상을 받지 못한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 이야기

오늘은 아직도 많은 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배트를 거꾸로 잡아도 타율 3할을 칠 수 있다던 타격 천재 장효조는 프로 10년 동안 전무후무한 통산 타율 0.331를 보유한 레전드 선수입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불멸의 기록은 1985년 부터 1987년 까지의 3년 연속 타격왕입니다. 이 기록도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장효조 선수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어마 무시한 타격 기술을 가진 모든 투수의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미 아마추어 타격 타이틀을 싹쓸이 한 너무나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그럼 먼저 그의 아마추어, 프로 시절의 기록을 하나 하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효조 고교시절 성적

먼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주요 대회별 타율을 아래의 그림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효조 고교야구 성적


장효조 대학, 실업시절 성적 

이번에는 대학, 실업야구 시절 주요 기록을 아래의 이미지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효조 대학 실업 야구 성적

장효조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 기록 중 가장 놀라운 것은 100타석 이상을 치면서 1번도 아닌 2번의 4할 타율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1982년에는 한국에서 세계 야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위해 국가는 주요 선수들의 프로행을 1년 미루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워낙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던  장효조도 당연히 대표팀에 선발되어 동기생들 보다 1년 늦은 1983년에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장효조 프로야구 성적

프로 진출 첫 해, 장효조 선수는 물오른 타격감을 보여주며 무려 0.369로 타율 1위를 차지하며 프로의 세계에서도 또 한번 타격의 달인임을 입증합니다. 또한 타율 뿐만 아니라 0.601로 장타율 1위, 0.475로 출루율 1위를 기록하여 그의 신인왕 수상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압도적인 기록에도 장효조는 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하였습니다. 1983년 신인상 수상자는 장효조 선수가 아닌 OB 베어스의 박종훈 선수 였습니다.

그럼 여기서 먼저 1983년 장효조 선수와 박종훈 선수의 기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두 선수의 1983년 기록은 아래의 이미지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효조 박종훈 성적 비교

앞서 비교한 것처럼 장효조 선수는 박종훈 선수 보다 압도적인 기록을 보여주었지만 “장효조는 너무 신인 같지 않다”는 이유로 박종훈 선수가 신인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또한 MVP 투표에서는 홈런 1위, 타점 1위 의 이만수 선수가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장효조는 상복이 없다”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효조 영구결번

또 한가지 장효조 선수에게 아쉬운 점은 그의 등번호 10번의 영구결번입니다. 지금 삼성의 등번호 10번은 양준혁 선수의 이름으로 영구결번 되어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장효조 선수의 등번호 10번이 그의 이름으로 영구결번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고 있는 팬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양준혁 선수의 이름으로 하나의 등번호가 영구결번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닐 것이며 다만 장효조 선수의 번호가 영구결번 되지 못한 아쉬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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