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희와 김현준은 허재 보다 3점슛을 적게 던진 선수들이었다.

이충희, 김현준, 허재의 득점 방식

오늘은 1980년대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슈터로 알려진 이충희 선수와 김현준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충희 선수와 김현준 선수를 기억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것 중 하나는 아마도 “3점 슈터”라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의외의 사실이지만 두 선수의 선수시절 기록을 보면 사실 두 선수의 전체득점 중 3점슛 득점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상당히 낮습니다.


물론 두 선수의 3점슛이 부정확하다거나 3점슛 능력이 떨어졌던 것은 절대로 아니며 단지 그들은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가진 선수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3점슛 만 능한 슈터는 아니었고 정확한 자유투, 뛰어난 돌파, 정확한 미드레인지 점퍼를 겸비한 한국 농구 최고의 슈터 중 한명이었습니다. 두 선수의 이러한 다양한 공격 옵션은 그들을 최고의 슈터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슛도사”, “전자슈터”라는 별명을 가진 레전드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두 선수의 3점슛 기록 중 재미있는 사실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허재 선수가 두 선수 보다 높은 3점슛 득점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충희, 김현준 선수가 3점슈터의 이미지가 더 강한데 오히려 허재 선수가 두 선수 보다 많은 3점슛을 기록했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충희, 김현준, 허재 3점슛 기록 


그럼 이제 두 선수의 선수시절 기록을 전체 득점 중 3점슛에 의한 득점 비중을 중심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글에 포함된 기록은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기록이며 대한농구협회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두 선수가 활약하던 시절 최고의 성인 농구 대회는 “농구 대잔치” 였으며 “농구 대잔치”에 처음으로 3점슛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5년 부터 입니다.

1985년 농구대잔치 기록

1985년 농구대잔치에서는 3점슛이 처음으로 도입된 시즌이라서 그런지 이충희, 김현준 선수의 3점슛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985년 대회까지만 해도 두 선수는 거의 2점슛과 자유투로 득점을 하였지만 두 선수 모두 평균 득점 30점을 넘기며 최고의 슈터임을 보여주었습니다.


1986년 농구대잔치에서 두 선수는 득점 1위와 2위를 차지했는데 이충희 선수의 3점슛 득점은 전체 득점의 22.08%였고 김현준 선수는 18.54%에 불과했습니다.

1986년 농구대잔치 기록

오히려 당시 중앙대학교 소속이었던 허재 선수는 득점 중 50.89%를 3점슛으로 득점하며 두 선수 보다 3점슛을 통한 득점을 상당히 많이 기록합니다.



1987년에도 이충희 선수와 김현준 선수의 3점슛 득점은 전체 득점 중 21.88%와 29.60%로 30%를 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87년 농구대잔치 기록

또한 1988년에도 김현준 선수와 이충희 선수의 3점슛 득점은 전체 득점 중 27.58%와 19.63%를 기록하는데 이는 허재 선수의 34.65% 보다 적은 비율입니다. 

1988년 농구대잔치 기록


1989년과 1990년도 모두 김현준 선수는 20% 초반의 3점슛 득점 비중을 보여주었고 이충희 선수는 1990년 비로소 처음으로 30%대 3점슛 득점 비중을 기록합니다. 

1989년, 1990년 농구대잔치 기록

1989년과 1990년에도 허재 선수의 3점슛 득점 비중은 각 50%, 45.61%를 기록하며 이충희, 김현준 선수보다 더 많은 3점슛 득점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후 이충희 선수는 거의 국내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하였고 김현준 선수는 은퇴시즌인 1994년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35% 이하의 3점슛 득점 비중을 기록하였습니다.   

1991년 - 1994년 농구대잔치 기록

또한 1994년은 김현준 선수의 농구대잔치 마지막 시즌이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김현준 선수의 전체 득점 중 3점슛 득점 비중이 허재 선수를 앞선 시즌이기도 합니다.


앞서 살펴 본 농구대잔치 기록을 통해 이충희 선수와 김현준 선수는 분명 3점슛에만 의존한 선수들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때로는 그들은 호쾌한 3점슛으로 팬들을 매료시켰었지만 그들은 3점슛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로 당시 한국농구를 이끌었던 최고의 슈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