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국 귀화 농구선수 라건아의 인생 스토리
오늘은 라건아(미국명:라틀리프)선수의 NBA 드래프트 실패와 한국 프로농구에 진출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라건아선수의 미국이름은 라틀리프 한국에 귀화한 후 한국이름을 라건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건아는 한국 농구에서 최초로 귀화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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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귀화 농구선수 라건아선수 |
1) 라건아의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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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라건아 |
라건아선수는 '헬 로드 '라고 부르던 미국 동부의 빈민가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 동네는 사람들이 가난속에 살고 있었고, 주위에 어울리는 친구들은 패싸움과 도둑질을 하는 그런 동네라고 합니다. 물론 라건아도 한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자신을 홀로 키우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농구에 매진하여 농구를 했다고 합니다.
라건아는 어려서 부터 운동에 많은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스포츠 종목 중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라건아 어머니는 미식축구를 싫어하는데 다칠 확률이 높고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운동이라 싫다고 하셨다고 하구요. 복싱도 마찰이 심한 운동이라 어머니가 안 좋아하셔서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늘 라건아가 다칠까봐 걱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육상을 시작했지만 돈 벌기가 정말 어렵다고 들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농구를 택해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2) 라건아의 대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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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건아의 대학시절 모습 |
라건아는 사실 농구를 열심히 해서 운동선수도 성적이 돼야 받아주는 미국의 입시제도 때문에 처음에는 NCAA 소속의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칼리지로 진학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 학교가 미국에서 가장 좋은 주니어 칼리지였다고 하네요.
그 이후 리그 전체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됐고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그렇게 스카웃이 돼서 NCAA에 속한 미주리대학교에 가게 되었고 편입을 하여 3학년때 처음 NCAA 무대를 밟게 됩니다. 미주리대학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꿈의 무대인 NBA 진출에 대한 꿈을 이어가게 됩니다.
3) 라건아의 NBA 도전
당시 NBA 스카우터의 라건아의 평가를 잠깐 보겠습니다.
그가 27득점을 올림 경기를 본 후 스카우터는 “공이 그의 손에 오래 있지 않았다. 라건아는 몇번의 터치로 득점을 만들어 내었다” “라틀리트는 사이즈(키)가 조금 작은 편이다. 하지만 영리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선수다. NBA에서 라트리프는 스타가 될 확률은 없지만 벤치맴 버로서는 훌륭하다” 스카우터들로 부터 키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라건아는 NBA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4) 라건아의 KBL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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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귀화한 라건아 |
사실 라틀리는 미국에서 하부리그에서 조금 더 활약을 했다면 NBA에 진출할 기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는 결국 한국 KBL 진출을 선택하게 됩니다. 한국행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를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가족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해외 진출을 결심했다. 에이전트가 한국, 일본, 독일, 이스라엘 등을 추천해줬다. 나는 "가장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가 겠다"고 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KBL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지명을 받았다”
이런 사연으로 라건아는 한국에 진출하였고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귀화하여 국가대표로 뛰는 미국인이자 한국인인 라틀리프, 라건아가 된거 라고 합니다.
현재 라건아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으로 선발되어 국가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노장이 되어서 사실 앞으로 한국 농구의 골밑을 누가 책임질 지 걱정이 되는 상황입니다. 아마튼 그의 KBL과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은 많은 농구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라건아선수의 NBA 드래프트 실패와 한국 프로농구에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