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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에 등재된 깨지기 힘든 농구 기록 TOP 10

기네스북에 등재된 농구 기록 오늘은 기네스북에 오른 농구 분야 세계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기네스북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재미난 기록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이 항상 세계 최고의 기록은 아닐 수 있는데요. 기네스북의 내부 절차에 따라 기록의 등재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흥미로 볼 수 있는 재미난 기록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름의 기준으로 꺠지기 힘든 기록 10가지를 선정해 보았습니다. 그럼 농구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등재된 깨지기 힘든 기록 TOP 10을 알아 보겠습니다. 참고로 아래의 순서는 순위와는 무관함을 말씀 드립니다. 트램플린 덩크슛 최장거리 - 6.18 m 이 농구 기록은 기네스북 기록의 날 행사에서 헝가리의 발린트 허스자르가 작성한 기록입니다. 이 경기는 트램플린에서 점프 후 한바퀴 회전 후 덩크슛을 성공한 최장거리를 측정하는 경기라고 합니다.우승자는 트램플린과 골대의 거리가 6.18미터인 상태에서 덩크슛을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NBA 최장 경기시간 - 78분 (연장전 6회) 이 기록은 농구 전체 종목의 기록은 아니며 NBA 기록인데 1951년 인디아나폴리스와 로체스터의 경기에서 작성된 기록이라고 합니다. 경기는 인니아나폴리스가 75-73으로 승리했다고 하는데 양팀 모두 슛 성공률이 엄청나게 저조한 경기였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선정해 보았습니다. 최고 높이 골대 덩크슛 - 3.65 m 육상 높이뛰기 종목에서 바의 높이를 높여가며 기록을 측정하듯이 이 기록은 농구 골대를 높여가며 덩크슛을 성공한 높이를 측정한 기네스북 기록입니다. 국제 정규 골대는 높이가 3.05미터 입니다. 이 기록은 정규골대보다 약 60cm 높은 골대에서 덩크슛을 성공시킨 기록이네요.이 ...

여준석이 입학한 곤자가 대학(Gonzaga University) 농구팀은 어떤팀인가?

여준석 곤자가 대학교 입학 한국의 농구 기대주 여준석 선수가 얼마전 미국의 농구 명문대학 곤자가 대학에 입학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여준석 선수는 우리가 보아온 일반적인 한국 선수들과는 다르게 엄청난 탄력을 보여하고 있어서 미국 대학농구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기대하는 팬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여준석 선수가 미국 대학 농구 NCAA에서 좋은 활약을 바탕을 NBA에 진출하는 모습을 꼭 보았으면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준석 선수가 입학한 곤자가 대학(Gonzaga University)는 어떤 대학교 인지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곤자가 대학교 농구팀 요약 곤자가 대학교(Gonzaga University)의 남자 농구팀은 워싱턴 주 스포캔에 위치한 디비전 I 프로그램입니다. 이 팀은 1917년에 설립되었으며 풍부한 성공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주목할만한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2회 연속 NCAA 토너먼트 진출 (1999-2020) 16강 진출  - 5회 (1999, 2000, 2015, 2017, 2021) 엘리트 에이트 (Elite Eight) -  2회 출전(1999, 2015) 1 파이널 포(4강) - 1회 진출 (2017) Gonzaga는 NBA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존 스탁턴(John Stockton), 애덤 모리슨(Adam Morrison), 켈리 올리닉(Kelly Olynyk) 및 하치무라 루이(Rui Hachimura)를 포함하여 많은 성공적인 선수를 배출했습니다. 이 팀은 강력한 팬 지원으로 유명하며 흥미진진하고 빠른 템포 스타일의 농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국 농구 선수 NBA 진출 도전 기록 (하승진, 방성윤, 이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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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NCAA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현중선수가 과연 NBA에 진출할 수 있을지 많은 팬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한국 농구 선수의 NBA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많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농구의 NBA 도전 역사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이 포스팅을 통해서 한국 농구의 NBA 도전사에 대해서 깔끔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서장훈, 최진수 선수도 미국 대학 농구팀에서 활약한 적은 있지만 이번 포스팅은 NBA 또는 NBA 하부리그까지 진출했던 하승진, 방성윤, 이대성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NBA 진출 선수 하승진 NBA 진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하승진(221㎝)인데 하승진은 한국 농구 사상 최초로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 진출한 선수입니다.  2004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7순위(전체 46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되어 2004 – 2005, 2005-2006 두 시즌에서 NBA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하승진에 NBA 진출에 성공한 첫번째 이유는 221cm의 신장이었습니다. 한국인 최초 NBA 진출 선수 하승진 하지만 하승진은 피지컬 이외에는 많은 부분에서 NBA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을 노출하며 NBA에서 많은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는데 2004-2005시즌 평균 1.4득점, 0.9 리바운드, 2005-2006시즌 평균 1.6득점, 1.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아쉽게 그의 NBA 생활을 끝내게 됩니다.  일부 농구 전문가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성공을 이끈 실패의 순간 TO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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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농구선수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분명 어려운 시련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시련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하였고 또한 더욱 분발하는 노력의 계기가 되어 최고로 성공한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그는 그의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선수생활을 하며 9,000 개 이상의 슛을 실패하였고" "약 300경기에서 패배하였으며" "6번의 위닝 샷(승부를 결정짓는 클러치 샷)을 실패하였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시련, 실수, 실패의 순간 5가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디트로이트에 3년 연속 패배 사실 우리는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 즉 우승하는 장면만을 주로 기억하고 있지만 디트로이트의 Bad Boys는 조던에게 3년 연속 패배의 쓴잔을 맛보게했던 팀입니다. 조 듀마스,  아이자하 토마스, 데니스 로드맨 등으로 구성된 디트로이트는 서서히 쇠퇴기에 접어든 LA 레이커스, 보스톤 셀틱스를 넘어 강자로 굴림하는데 88-89시즌, 89-90시즌, 90-91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를 격파합니다.  이 시절 조던은 개인기록은 좋았지만 팀의 패배로 이 시기에 마이클 조던에게는 성공이라는 단어 보다는 실패라는 단어가 조금 더 어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조던에게 3년 연속 패배를 안겨준 디트로이트   시즌 3점슛 성공률 16% 마이클 조던은 전문적인 3점 슈터는 아닙니다만 성공률이 크게 나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하지만 3점슛 성공률 16%는 어쩌면 그의 명성에 비하면 너무나 낮은 수치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데뷔 후 4년 동안의 3점슛 성공률은 16%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의 성공률은 NBA 최고의 선수 50명 중 꼴지에 해당하는 기록이라고 하네요. 이 시기에는 상대팀 선수들도 조던의 3점슛을 강하게 수비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시기는 ...

최초의 한국 귀화 농구선수 라건아의 인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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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라건아(미국명:라틀리프)선수의 NBA 드래프트 실패와 한국 프로농구에 진출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라건아선수의 미국이름은 라틀리프 한국에 귀화한 후 한국이름을 라건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건아는 한국 농구에서 최초로 귀화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귀화 농구선수 라건아선수 1) 라건아의 어린시절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라건아 라건아선수는 '헬 로드 '라고 부르던 미국 동부의 빈민가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 동네는 사람들이 가난속에 살고 있었고, 주위에 어울리는 친구들은 패싸움과 도둑질을 하는 그런 동네라고 합니다. 물론 라건아도 한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자신을 홀로 키우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농구에 매진하여 농구를 했다고 합니다. 라건아는 어려서 부터 운동에 많은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스포츠 종목 중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라건아 어머니는 미식축구를 싫어하는데 다칠 확률이 높고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운동이라 싫다고 하셨다고 하구요. 복싱도 마찰이 심한 운동이라 어머니가 안 좋아하셔서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늘 라건아가 다칠까봐 걱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육상을 시작했지만 돈 벌기가 정말 어렵다고 들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농구를 택해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2) 라건아의 대학시절 라건아의 대학시절 모습 라건아는 사실 농구를 열심히 해서 운동선수도 성적이 돼야 받아주는 미국의 입시제도 때문에 처음에는 NCAA 소속의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칼리지로 진학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 학교가 미국에서 가장 좋은 주니어 칼리지였다고 하네요.  그 이후 리그 전체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됐고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그렇게 스카웃이 돼서 NCAA에 속한 미주리대학교에 가게 되었고 편입을 하여 3학년때 처음 NCAA 무대를 밟게 됩니다. 미주리대학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꿈의 무대인 NBA 진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