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체력왕이었던 레전드 복서 문성길

이번 포스팅은 추억의 복싱 레전드 문성길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정구, 유명우, 박종팔 선수등과 함께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로 많은 팬들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며 몇년전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했는데 “미국에 핵주먹 타이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돌주먹 문성길이 있다”고 말하며 아직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강한 펀치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얘기할 정도로 문성길은 펀치의 파괴력이 좋아서 돌주먹으로도 유명하지만 체력과 지구력이 좋은 선수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선수입니다.


그럼 먼저 문성길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문성길선수는 고등학교 시절 중반까지는 전국에서 3-4위권의 선수였다고 합니다. 기술적으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여 강한 펀치를 이용하는 스타일의 복싱 선수였습니다. 강한 펀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파이팅을 위한 체력이 필요로 했었는데 그의 체력은 목포 덕인고 시절에 노력으로 얻은 결과라고 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 시 육상 특기생으로 입학한 후 복싱으로 전향을 했다고 합니다. 

덕인고 시절 유달산 새벽운동을 할 때 정상까지 쉬지 않고 끝까지 도달하는 유일한 선수가 문성길 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미 이때부터 체력왕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체력은 갖추어져 었었고 이는 중학시설 육상선수 경력과 유달산 달리기로 그의 복싱 스태미너의 기초가 다졌기에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문성길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을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얘기가 바로 허영모 선수와의 라이벌전입니다. 두 선수의 대결은 아마추어 복싱이었지만 당시에 프로경기에 버금가는 관심과 인기가 있었던 빅매치였습니다. 두 선수 모두 8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었으며 허영모가 체급을 올리며 두 선수의 매치가 성사되었습니다.

아웃복싱의 허영모, 인파이팅의 문성길의 대결에서 문성길은 3차례 모두 승리를 하게됩니다. 심판이 문성길선수의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 박수를 쳐주는 허영모선수의 훈훈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허영모를 누르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문성길은 세계 복싱 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하며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금메달을 딴 문성길은 “세계대회에서 상대했던 선수들 보다 허영모를 이기는 것이 더 어려웠다”며 허영모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의 세계대회 금메달의 원동력 중 하나였던 체력에 대한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보면 당시 국가대표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 입촌을 하여 훈련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대표선수들은 매주 선수촌 뒤 불암산을 달리는 공포의 ‘크로스컨트리’ 에 참여했다고 하며 보통 선수들의 기록은 대략 25분~28분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성길선수의 기록은 21분대로 당시 선수 중 최고였다고 합니다. 공식기록은 아니지만 국가대표 선수 중 크로스컨트리의 1인자 즉 체력왕이었던 것 입니다.

문성길은 또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아마추어 복서가 됩니다.


그럼 이제  문성길 선수의 프로시절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1987년 프로로 데뷔한 문성길은 강력한 펀치로 프로무대도 정복 하게 됩니다. 그는 1988년 WBA 밴텀급 챔피온에 오르게 되고 2차례 타이틀방어를 하고 태국에서 갤럭시에 타이틀을 빼았기지만 1990년 WBA 슈퍼플라이급 챔피온에 오르며 2체급 석권에 성공합니다. 9차례 방어 후 다소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10차 방어전에서 호세 루이스 부에노에 패하며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한 복싱평론가의 사견이기는 하지만 “서양선수와 상대해서 체력과 피지컬이 밀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아시아선수 중 한명이 문성길”이라고 평가 받았던 그가 아마추어와 프로에서 모두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펀치 파워 뿐만 아니라 엄청난 체력도 큰 몫을 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