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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야구 영웅 이치로도 존경심을 표한 한국인 야구선수 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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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 타자 레전드 중 1명인 장훈선수는 일본에서 출생했지만 한국국적의 전 야구선수입니다. 일본으로의 귀화를 여러 차례 제의를 받았지만 끝내 한국국적을 유지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장훈선수가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장훈 선수 같이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수는 한국인이라는 신분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무시와 비난을 받아가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편하게 살자고 조국을 버리는 그따위 짓을 하려거든 당장 야구를 때려치고 히로시마로 내려와라!" 이 말은 장훈이 도에이 구단주로 부터 양자 제의를 받은 후 장훈의 어머니가 장훈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장훈이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어머니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재일교포의 설움을 정말로 잘 알고 있었던 장훈 선수의 어미니가 자신의 자식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정말로 용기있는 가르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본인으로 살아간다면 재일교포의 신분 보다는 경제적, 사회적인 이득이 상당히 많았을텐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행동으로 한국인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정말로 아무 부모나 할 수 있는 언행은 아닌것 같습니다.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사에서 전설적인 타자로 이치로도 항상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곤 했습니다. 물론 이치로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이 사진에 나온 이치로의 행동이 말해 주는 것은 분명 장훈이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 중 한명이라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타자가 장훈이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장훈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장훈 선수의 일본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장훈선수의 일본프로야구에서의 대표적인 업적을 이미지로 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위에 열거한 기록들은 워낙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 자세한 설명은 안하겠지만 한가지 코멘트를 하지면 그가 기록한...

국가대표 체력왕이었던 레전드 복서 문성길

이번 포스팅은 추억의 복싱 레전드 문성길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정구, 유명우, 박종팔 선수등과 함께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로 많은 팬들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며 몇년전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했는데 “미국에 핵주먹 타이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돌주먹 문성길이 있다”고 말하며 아직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강한 펀치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얘기할 정도로 문성길은 펀치의 파괴력이 좋아서 돌주먹으로도 유명하지만 체력과 지구력이 좋은 선수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선수입니다. 그럼 먼저 문성길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문성길선수는 고등학교 시절 중반까지는 전국에서 3-4위권의 선수였다고 합니다. 기술적으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여 강한 펀치를 이용하는 스타일의 복싱 선수였습니다. 강한 펀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파이팅을 위한 체력이 필요로 했었는데 그의 체력은 목포 덕인고 시절에 노력으로 얻은 결과라고 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 시 육상 특기생으로 입학한 후 복싱으로 전향을 했다고 합니다.  덕인고 시절 유달산 새벽운동을 할 때 정상까지 쉬지 않고 끝까지 도달하는 유일한 선수가 문성길 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미 이때부터 체력왕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체력은 갖추어져 었었고 이는 중학시설 육상선수 경력과 유달산 달리기로 그의 복싱 스태미너의 기초가 다졌기에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문성길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을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얘기가 바로 허영모 선수와의 라이벌전입니다. 두 선수의 대결은 아마추어 복싱이었지만 당시에 프로경기에 버금가는 관심과 인기가 있었던 빅매치였습니다. 두 선수 모두 8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었으며 허영모가 체급을 올리며 두 선수의 매치가 성사되었습니다. 아웃복싱의 허영모, 인파이팅의 문성길의 대결에서 문성길은 3차례 모두 승리를 하게됩니다. 심판이 문성길...

최고의 NBA 레전드 선수들 (우승, MVP, 올스타, 퍼스트팀 등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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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역대 NBA 레전드 선수들의 기록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곳에서 그동안 일반적으로 NBA 레전드 선수들을 비교하는 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비교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 동안은 일반적으로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 을 통해서 비교는 많이 이루어 졌지만 NBA 우승횟수, 시즌 MVP 수상 횟수, 파이널 MVP 수상 횟수, 퍼스트 팀 선정 횟수, 올스타 선정 횟수 등 을 통해서 레전드 선수들의 비교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크게 5개의 항목(NBA 우승횟수, 시즌 MVP 수상 횟수, 파이널 MVP 수상 횟수, 퍼스트 팀 선정 횟수, 올스타 선정 횟수)을 통해서 선수들을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위의 5개의 기록을 기준으로 NBA 최고의 레전드 선수들을 비교하는 이유는 그래도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 일반적인 개인기록 이외에는 위의 5개의 기록이 가장 객관적인 정보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그럼 어떤 레전드 선수들을 비교할까 고민을 했는데 그냥 위의 5개의 항목에 가장 많이 수상 또는 선정된 선수를 기준으로  하려고 하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미국의 인터넷 여론조사 및 통계사이트에서 선정한 최고의 선수들 10명이 있어서 그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그 사이트는 랭커닷컴이라는 사이트인데 지금도 투표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 그 순위가 바뀔 수 있지만 오늘을 기준으로 선정된 최고의 NBA 레전드 선수 10명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투표 중간 결과 먼저 현재까지 투표된 NBA 레전드 선수들 10명을 순위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위: 마이클 조던 2위: 래리 버드 3위: 르브론 제임스 4위: 압둘 자바 5위: 매직 존슨 6위: 윌트 챔벌린 7위: 코비 브라이언트 8위: 샤킬 오닐 9위: 빌 러셀 10위: 팀 던컨 항목별 선수별 수상 횟수 위의 순위에서 개인의 실력이나 기록이 꽤나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또한 인기순위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차범근이 세계 축구 레전드인 여러가지 이유들

차범근은 1970년, 1980년대에 유럽무대를 주름잡던 한국 축구의 레전드입니다. 차범근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은 정말로 인상적이었지만 당시에 국내 팬들은 가끔 녹화로 중계되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통해서만 그의 활약상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의 한국의 경제 수준이 독일 분데스리가의 중계권을 구매할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끔 일요일 아침에 녹화로 중계해 주던 차범근의 모습은 당시에는 조금은 낯설고 새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월드컵에서의 차범근의 모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한국의 경기를 중계하던 많은 해외 방송사들의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그가 공을 잡으면 이름 차범근 대신 “차붐”이라는 그의 별명 으로 그를 호칭할 정도로 그는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선수였습니다. 요즘 손흥민을 "소니"라고 부르는 것처럼 차범근의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최소한 유럽에서는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그는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가? 이번에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와 기록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79-80시즌 독일의 키커지에서 선정한 전반기 시즌 외국인 선수 평가 순위가 있는데 이 순위에서 외국인 선수 1위에 오른 선수가 바로 차범근 선수 였습니다. 당시에 독일 분데스리가가 세계 최고의 리그임을 감안한다면  외국인 선수 1위는 실로 대단한 기록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K리그를 상상해 보시면 K리그에서 활약했던 샤샤, 데얀, 사리체프 등 유명한 선수를 우리가 다 기억하듯이 독일의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차범근선수를 알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최근(2020년)에는 차범근의 67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레버쿠젠 등 분데스리가 3개 구단이 생일축하의 글 을 홈페이지와 SNS 등에 올렸습니다. 그가 소속되었던 팀에서 그가 레전드가 아니었다면 이런 메시지를 보냈을리가 없었겠...

수입이 가장 많은 프로 스포츠 선수였던 복싱 레전드 장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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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부분의 팬들은 한국 복싱 최고 전성기에 크게 기여했던 장정구 선수를 기억하실 겁니다. 장정구선수는 WBC 15차 방어 성공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번 선수로도 유명합니다. 장정구 선수가 프로 선수 중 최고의 수입을 기록한 해도 꽤나 있습니다. 복싱선수 수입이 총 대전료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매니저 등의 몫을 제외하고 공개되는 경우도 있어 애매하긴 하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최대한 미디어에 공개된 객관적인 정보로 그의 수입을 알아보겠습니다. 장정구의 수입이 많았던 1983년 부터 1987년 까지 5년간의 수입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1983년 1983년 국내 프로 스포츠 주요 선수 수입 아래는 씨름 이만기 선수가 장정구, 장명부 선수에 이어 프로 스포츠 선수 수입 3위를 기록했다는 1983년 기사입니다. 여기서 내용을 자세힌 살펴보면 장정구선수가 1위를 차지했다는 글을 눈에 띄입니다. 1982년 OB 베어스 우승의 주역 박철순선수도 3,200만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1위를 기록한 선수는  8,400만원의 수입을 올린  장정구선수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일단 1983년만 살펴 보아도 장정구선수가 스포츠 선수 중 수입이 가장 많았던 팩트는 확인된 것 같습니다. 1984년 1984년 국내 프로 스포츠 주요 선수 수입 1984년은 1억이 넘는 수입을 기록한 선수가 5명 나온 시즌으로 프로선수의 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했던 시즌입니다. 1984년은 야구 김일융선수가 계약금 6,600만원을 포함총 수익 1.485억원으로 1위를 차지합니다. 장명부선수의 수입도 상당히 높고 특히 해외파로 알려진 축구 조영증, 허정무선수가 국내로 돌아와서 많은 수입을 얻은 연도이기도 합니다. 1985년 1985년 국내 프로 스포츠 주요 선수 수입 1985년은 장정구선수가 다시 프로 스포츠 선수 중 수입 1위를 탈환한 연도입니다. 1985년 장정구선수의 수입을 대전료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