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에도 담배를 피우던 브라질 축구 선수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축구선수?

이번 포스팅에서는 1970년, 1980년 대에 활약했던 이름부터 특이한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 소크라테스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60경기에 출전하였고 1983년 남미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으며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100인에 선정된 브라질 축구 레전드입니다. 소크라테스 선수는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이름이 같다는 점 이외에도 특이한 점이 많은 독특한 삶을 살았던 축구선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커리어 보다는 그에 대한 재미나고 특이한 사실들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축구선수 소크라테스의 젊은시절

소크라테스의 본명은 소크라테스 브라질레이루 삼파이우 지 소자 비에이라 지 올리베이라 (Sócrates Brasileiro Sampaio de Souza Vieira de Oliveira)라고 하는데 정말로 이름이 긴 축구선수로도 유명합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고대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며 지어준 이름이며 형제들의 이름 모두가 그리스 문학에 나오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현역시절 한때 머리와 수염을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비슷하게 길러서 그의 외모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연상시키곤 했습니다. 

브라질 국가대표 시절 팬들은 이런 그의 외모와 미드필더로서 오른발 왼발을 모두 자유롭게 사용하는 그를 보고 “그라운드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은퇴 후에 철학을 전공하였고 철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며 정말로 철학자가 되었으며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말로 좋은 가정의 첫째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그는 학창시절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하며 전문의사를 꿈꾸고 있었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축구를 즐겼던 그는 의대 재학 중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 선수가 되며 그는 인생에서 큰 변화를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축구선수가 되었다고 의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으며 아버지와 타협하여 축구선수와 의대생의 생활을 병행하며 2가지 인생의 꿈에 동시에 도전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의사면허를 취득하여 은퇴 후에는 소아과 의사와 축구 해설 및 평론가로 활동하며 2개의 꿈을 동시에 이룬 축구선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특이한 행동들

그의 특이점 중 또 한가지는 그는 정말로 대단한 애연가 및 애주가였다는 것 입니다. 의사인 그가 애연가 및 애주가였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기 전에 이미 흡연과 음주를 즐겼는데 특히 경기 중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은 축구계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입니다. 

소크라테스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하프타임 때마다 담배를 통해 정신과 체력을 재충전을 했다고 하는데 그는 선수시절에도 하루 3갑 이상을 핀 골초로 유명합니다. 애연과 애주는 은퇴 후에도 계속되었고 이런 습관은 결국 그가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한 위장 출혈로 비교적 젊은 나이인 57세에 세상을 떠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력 중에서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는 젊은 시절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선 대표적인 운동선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군부의 탄압을 받았던 기억이 소크라테스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무튼 그는 경기때 마다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유니폼을 입고 나왔으며 많은 대중들 앞에서 민주화에 대한 연설도 했던 브라질 민주화 투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