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수, 미드필더와 공격수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
이번 포스팅에서는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서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중 한명으로 평가되고 있는 유상철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유상철 선수는 축구 명문 경신고등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사실 고등학교 1학년 까지는 신장이 너무 작아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키가 부쩍 자랐고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적인 부족함을 메우면서 서서히 실력을 갖춘 유망주로 성장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경신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U-19 대표팀에 선발되어 1990년 AFC U-19 챔피언십에서 북한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대회 출전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하지만 1991년 포르투갈 U-20 월드컵에는 남북단일팀이 구성되었는데 유상철 선수는 최종명단에서 탈락하며 세계대회 출전이 무산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른 축구 명문대학들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유상철 선수는 자주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건국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당시 건국대학에는 황선홍 선수가 있었는데 유상철 선수는 황선홍의 잦은 대표팀 차출로 1학년 부터 공격수로 뛸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황선홍 선수가 “공격수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경기는 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로 기억할 정도로 유상철 선수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멀티플레이어로서 재능을 보인 선수였습니다.
대학시절의 좋은 활약으로 그는 1994년 3월 대표팀에 선발되어 대표팀 데뷔전을 갖게 되는데 이날 그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고 합니다.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상철 선수는 1994년 현대 소속으로 프로에 데뷔하게 되는데 이 경기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하며 또 한번 변신에 성공하게 됩니다. 유상철 선수는 1994년 신인이었지만 수비수로서 베스트 11에 선정되면서 프로축구에서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르며 그의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입증합니다. 또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8강전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그는 최종 수비수로 출전하여 황선홍 선수의 힐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넣으며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대표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하였으며 1998년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하며 청소년 시절 남북단일팀 탈락으로 이루지 못한 세계대회 출전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앞선 2경기를 모두 패한 한국은 3차전에서 벨기에와 경기를 했는데 이 경기에서 유상철 선수는 윙백으로 출전하여 동점골을 뽑으며 한국팀의 대회 유일한 승점에 기여하게 됩니다. 1998년 당시 동료였던 김병지 선수는 “유상철 선수는 윙백으로 뛸 때 가장 훌륭하다”라고 할 정도로 유상철 선수는 정말로 윙백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훗날 히딩크 감독이 “측면 수비수로만 계속 뛰었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 또한 유상철 선수의 윙백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프랑스 월드컵 이후에 그는 프로축구에서 또 한번 팬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것은 1994년 수비수 베스트 11 선정에 이어 1998년 미드필더로 베스트 11에 선정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1998년 그는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공격수로도 출전하였고 득점왕을 차지하며 미드필더로서 베스트 11 선정과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희귀한 기록을 만들어 냅니다.
이후 또 한번의 월드컵 출전을 꿈꾸며 활약을 하고 있던 그는 히딩크 감독에 의해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고 이는 그에게는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하였던 히딩크 감독은 유상철 선수와 같이 안정적으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선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특히 유상철 선수는 멀티 플레이어 능력 뿐만 아니라 유럽선수들을 상대해도 밀리지 않는 몸싸움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대표팀에서는 꼭 필요한 선수였습니다.
유상철 선수는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폴란드 전에서 미드필더로 출전하였습니다. 그는 추가골 득점으로 월드컵 첫 승에 기여하며 히딩크 감독의 신뢰에 부응하였습니다. 특히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미드필더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이 변경되었음에도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한 것은 그의 탁월한 멀티 플레이어 능력이 빛을 발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유상철 선수는 J리그에서 친정팀 울산으로 복귀하며 “나머지 8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겠다”고 선언했지만 그의 말이 현실화될 거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상철 선수는 2002년 K리그 마지막 8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넣으며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고 공격수로서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2002년 베스트 11 수상으로 그는 1994년 수비수 베스트 11, 1998년 미드필더 베스트 11, 2002년 공격수 베스트 11에 선정되어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임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습니다.
1998년 월드컵에서 수비수로서 골을 넣었고 2002년 월드컵에서 미드필더로서 골을 넣었으며 K리그 득점왕 까지 차지했던 그를 팬들은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로 기억하고 있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