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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외국인 골키퍼 출전을 금지시켰던 0점대 방어율 골키퍼 사리체프 신의손

1992년 클라스가 다른 외국인 골키퍼 1명이 K리그에 입단합니다. 그는 K리그의 골키퍼 수준을한 단계 아니 그 이상 올려 놓은 인물입니다.  그 선수는 바로 신의손(사리체프) 선수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K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인 신의손 사리체프선수에 대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먼저 그가 소련(현 러시아)리그에서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그가 한국에 오기전 마지막으로 뛰었던 팀은 소련(현 러시아)리그 FC 도르페도 모스크바였습니다. 신의손은 이팀에서 1981년 ~ 1991년까지 11년간 활약을 했는데 11년 통산 161경기-153실점으로 0.95의 방어율 (경기당실점)을 기록한 당시 소련 최고의 골키퍼 중 1명이었습니다. 또한 신의손은 1991년 소련리그 최우수골키퍼 상을 수상하며 구 소련리그 최고의 골키퍼에 등극하게 됩니다.  참고로 신의손의 조국은 타지키스탄으로 구 소련 붕괴 후 그의 국적은 타지키스탄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소련의 축구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우승을 하였을 정도로 세계 축구 강국이었으며 리그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었습니다. 이러한 당시 소련의 축구수준을 통해 신의손(사리체프)의 소련에서의 성적이 결코 평가 절하될 수 없는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그의 K리그에서의 기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신의손은 1992년 일화에 입단한 첫해 부터 신들린 선방을 선보이며 국내 관중들에게 한 차원 다른 골키퍼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일화는 신의손의 합류 후 전력이 탄탄해 지며 1993년, 1994년, 1995년 3년 연속 K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의 K리그 진출 후 첫 4년 동안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1992년:  40경기 출전 – 31실점 1993년:  35경기 출전 – 33실점 1994년:  36경기 출전 – 33실점 1995년:  34경기 출전 – 27실점 1 992년 – 1995년 (4년 합산):  145경기...

최초의 한국 귀화 농구선수 라건아의 인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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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라건아(미국명:라틀리프)선수의 NBA 드래프트 실패와 한국 프로농구에 진출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라건아선수의 미국이름은 라틀리프 한국에 귀화한 후 한국이름을 라건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건아는 한국 농구에서 최초로 귀화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귀화 농구선수 라건아선수 1) 라건아의 어린시절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라건아 라건아선수는 '헬 로드 '라고 부르던 미국 동부의 빈민가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 동네는 사람들이 가난속에 살고 있었고, 주위에 어울리는 친구들은 패싸움과 도둑질을 하는 그런 동네라고 합니다. 물론 라건아도 한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자신을 홀로 키우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농구에 매진하여 농구를 했다고 합니다. 라건아는 어려서 부터 운동에 많은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스포츠 종목 중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라건아 어머니는 미식축구를 싫어하는데 다칠 확률이 높고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운동이라 싫다고 하셨다고 하구요. 복싱도 마찰이 심한 운동이라 어머니가 안 좋아하셔서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늘 라건아가 다칠까봐 걱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육상을 시작했지만 돈 벌기가 정말 어렵다고 들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농구를 택해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2) 라건아의 대학시절 라건아의 대학시절 모습 라건아는 사실 농구를 열심히 해서 운동선수도 성적이 돼야 받아주는 미국의 입시제도 때문에 처음에는 NCAA 소속의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칼리지로 진학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 학교가 미국에서 가장 좋은 주니어 칼리지였다고 하네요.  그 이후 리그 전체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됐고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그렇게 스카웃이 돼서 NCAA에 속한 미주리대학교에 가게 되었고 편입을 하여 3학년때 처음 NCAA 무대를 밟게 됩니다. 미주리대학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꿈의 무대인 NBA 진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