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한국시리즈 4승을 놓쳐버린 투수 김일융
이번 포스팅에서는 1984년 부터 1986년 까지 한국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재일교포 출신 좌완 투수 김일융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김일융 선수는 한국 진출 첫 해인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와 엄청난 투수 대결을 펼치며 강인한 인상을 팬들에게 남긴 선수입니다. 먼저 김일융 선수의 한국시리즈 이야기에 앞서 그가 일본에서는 어떤 선수였는지 또한 얼만큼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일융 선수가 일본 야구계에서 크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때는 1968년이었는데 그는 당시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선수였다고 합니다. 김일융은 일본 고교야구 최고의 대회인 고시엔 대회에서 비록 1학년이었지만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특히 그의 묵직하고 빠른 볼, 185cm의 건장한 체구, 왼손투수라는 희소성은 많은 프로구단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내며 그의 가치는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일본 내 학교 졸업자는 드래프트를 거쳐야만 프로에 입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팀도 그를 뽑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에 간절히 김일융을 원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를 고등학교에서 중퇴시킨 후 번외지명으로 김일융과 계약을 하며 스카우트의 승자가 됩니다. 프로에 진출한 김일융은 1976년 부터 1979년 까지 4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었고 2차례 방어율 1위와 2차례 구원 1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1981년 이후에는 부상으로 예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다른 팀을 물색하던 중 일본인 양아버지 나가지마 감독의 적극 권유로 한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1983년 장명부의 활약은 재일교포 투수들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고 삼성과 OB는 김일융을 영입하기 위해서 거액을 배팅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융의 스카우트는 결국 당시 환율로 한화 2억원 정도 되는 5,500만엔을 제시한 삼성이 승자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