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투수인 게시물 표시

유희관 만큼 느린공으로 MLB를 지배했던 투수들

 메이저 리그 야구(MLB) 역사상 가장 느린 투구는 1951년 에디 개델 (Eddie Gaedel)이 던진 투구라고 합니다. 당시 시속 25마일(약 40km/h)로 기록되었지만 개델은 MLB에서 타자로 주로 활약한 선수로 잠시 이 기록은 그가 잠시 투수로 투구한 기록이어서 MLB에서 최저 시속을 기록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 투수의 경우 가장 느린 투구는 일반적으로 너클볼 투수가 던집니다. 너클볼은 마스터하기 어려운 투구이지만 올바르게 던지면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스핀이 부족해 공이 공중에서 펄럭이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타자들이 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런 느린공(너클볼)으로 MLB에서 왠만한 빠른공 투수들 보다 더 좋은 활약을 했던 선수는 어떤 선수가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R.A. 디키의 느린공 최근 기억에 가장 느린 너클볼 투수 중 한 명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MLB에서 뛰었던 디키가 있습니다. 그의 너클볼은 일반적으로 리그의 다른 대부분의 투구보다 훨씬 느린 70마일 중반대(약 110km/h)의 공 을 던졌습니다.  R.A. 디키는 2012년 뉴욕 메츠에서 내셔널 리그 사이영 상을 수상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너클볼 투수 중 한 명입니다. 2012년 시즌 동안 디키는 2.73의 방어율과 230개의 삼진으로 20승 6패를 기록 했습니다. 그는 70대 중반에 너클볼을 던졌는데, 이는 리그의 다른 대부분의 투구보다 상당히 느린 속도입니다. 팀 웨이크필드 의  느린공 다른 주목할만한 너클볼 투수로는 1995년부터 2011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고 팀과 함께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 웨이크필드가 있습니다. 웨이크필드의 너클볼 스피드도 70마일 중반대(약 110km/h) 였고, 투수로서 내구성 좋아 롱런한 선수입니다. 찰리 허프 의  느린공 찰리 허프는 1970년부터 1994년까지 MLB에서 뛰었...

퍼펙트 게임을 8회, 9회에 놓친 프로야구 투수들

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은 투수들이 가장 달성하고 싶은 꿈의 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아직까지는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투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퍼펙트게임에 근접한 투구를 기록한 투수들이 있어 이 기록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로 8회, 9회에 아쉽게 퍼펙트게임을 놓친 선수와 경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1982년 8월 15일 (삼성 황규봉) 1982년 8월 15일, 삼성의 선발투수 황규봉은 9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9회 삼미의 양승관은 안타를 기록하며 황규봉의 퍼펙트게임을 무산시킵니다. 이날 경기에서 황규봉은 최종 9 이닝 2 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여 다소나마 퍼펙트 게임을 놓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1991년 10월 13일 (빙그레 송진우) 1991년 10월 13일,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빙그레 선발투수 송진우는 8회 2사까지 퍼펙트 투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8회 2아웃 에서 해태 정회열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송진우의 퍼펙트 게임이 무산 되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빙그레는 1 대 4로 패배하였으며 송진우는 최종적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습니다.  1997년 5월 23일 (한화 정민철) 1997년 5월 23일, 한화 선발투수 정민철은 8회 1아웃까지 OB의 타선을 퍼펙트게임으로 막고 있었습니다. 8회 1사, 2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정민철의 투구에 심정수가 헛스윙하며 삼진아웃이 처리되려는 순간에 볼이 포수 뒤로 빠지며 낫 아웃 상황이 선언되었고 심정수가 1루에 진루하며 정민철의 퍼펙트게임은 무산되었습니다. 정민철은 퍼펙트 게임은 놓쳤지만 이후에 완벽한 투구를 보여주며 무사사구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2004년 10월 25일 (삼성 배영수) 2004년 10월 25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 선발투수 배영수는 8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고...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맞혀 잡는 투구의 달인 투수 장호연

오늘은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3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짱꼴라”라는 별명을 가졌던 투수 장호연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장호연 선수는 1983년 부터 1995년 까지 13시즌 동안 OB 베이스에서 만 선수생활을 한 원클럽맨으로 완투형 선발투수로 잘 알려진 선수입니다. 아구팬이라면 장호연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그는 활약에 비해서 많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레전드 선수 중 한명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장호연 선수가 프로야구에 남긴 의미있는 기록들과 그의 독특한 투구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장호연 선수은 사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의 야구명문 대구상고에서 고등학교 2학년 까지 선수생활을 하다가 충암고로 전학 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입니다. 그는 대구상고에서는 투수로서 생존이 어렵다 판단하였고 학교에 전학을 요청하여 충암고로 팀을 옮긴 고등학교 시절 부터 범상치 않은 선수였습니다. 그는 충암고 졸업 후 동국대에 진학한 후 고교시절의 설움을 씻으며 서서히 투수로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3년 OB에 1차지명으로 뽑혀 프로에 진출하게 됩니다. 원년 우승팀 OB는 박철순 선수의 부상으로 1983년 개막전 선발투수의 선정에 고심이 많았는데 코칭 스탭은 신인 장호연을 개막전 선발로 내세우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우려반 기대반으로 등판한 장호연 선수는 MBC 타자들을 다양한 구질로 요리하며 개막전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프로야구에서 그의 존재를 알리게 됩니다. 이날 장호연 선수는 120㎞대 직구를 던지다 직구보다 빠른 시속 135㎞짜리 슬라이더를 던지는 등 속도와 구질을 변화시키며 개막전 완봉승의 기록을 만들어 냅니다. 개막전 완봉승에도 불구하고 프로 첫해 장호연 선수는 6승 17패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기에 등판하며 타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갔습니다. 장호연 선수의 어록 중 “공 3개로 삼진을 잡는 것보다 공 1개로 맞혀 잡는 게 낫다”라는 말처럼 그는 맞혀 잡는 투구로 시즌을 ...

아쉽게 한국시리즈 4승을 놓쳐버린 투수 김일융

이번 포스팅에서는 1984년 부터 1986년 까지 한국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재일교포 출신 좌완 투수 김일융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김일융 선수는 한국 진출 첫 해인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와 엄청난 투수 대결을 펼치며 강인한 인상을 팬들에게 남긴 선수입니다. 먼저 김일융 선수의 한국시리즈 이야기에 앞서 그가 일본에서는 어떤 선수였는지 또한 얼만큼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일융 선수가 일본 야구계에서 크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때는 1968년이었는데 그는 당시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선수였다고 합니다. 김일융은 일본 고교야구 최고의 대회인 고시엔 대회에서 비록 1학년이었지만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특히 그의 묵직하고 빠른 볼, 185cm의 건장한 체구, 왼손투수라는 희소성은 많은 프로구단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내며 그의 가치는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일본 내 학교 졸업자는 드래프트를 거쳐야만 프로에 입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팀도 그를 뽑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에 간절히 김일융을 원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를 고등학교에서 중퇴시킨 후 번외지명으로 김일융과 계약을 하며 스카우트의 승자가 됩니다. 프로에 진출한 김일융은 1976년 부터 1979년 까지 4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었고 2차례 방어율 1위와 2차례 구원 1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1981년 이후에는 부상으로 예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다른 팀을 물색하던 중 일본인 양아버지 나가지마 감독의 적극 권유로 한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1983년 장명부의 활약은 재일교포 투수들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고 삼성과 OB는 김일융을 영입하기 위해서 거액을 배팅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융의 스카우트는 결국 당시 환율로 한화 2억원 정도 되는 5,500만엔을 제시한 삼성이 승자가 되...

한미일 프로야구 모두 최다패전투수 = 최다승리투수라는 공식이 있는걸까?

이미지
오늘은 프로야구 투수들의 기록 중 재미난 것이 있어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미국,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다승 투수들은 모두 최다 패전을 기록한 투수들이라는 공통점 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평행이론이라고까지 얘기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록이 3개국 모두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재미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보통 투수들은 많은 승리, 좋은 방어율, 많은 경기 출장 등 의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 자료를 조사하다보니 어쩜 최다 패전 기록도 나름 의미있는 기록이며 그 선수를 평가하는 하나의 자료로 쓰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에서 패전을 한다는 것은 운이 있었던 운이 없었던 투수에게는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경기에 출전해서 많은 패배를 당한 것도 나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 포스팅을 만들려고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까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최다 패전을 기록한 투수 10명이 모두 프로야구 레전드라는 사실입니다. 패전을 많은 했다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 통산 패전이 많은 투수들은 대부분 레전드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다 패전을 기록했던 선수들을 알아보기에 앞서 먼저  해외 프로야구에서는 어떤 선수가 최다 패전을 기록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최다승, 최다패 투수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최다 패전을 기록한 투수는 카네다 마사이치라는 선수입니다. 마사이치 선수는 1950년 부터 1969년 까지 20년간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선수인데 298경기에서 패전을 기록 했다고 합니다. 마사이치는 944경기에 출전하여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다 승리인 400승 , 방어율 2.34를 기록한 정말로 요즘 프로야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록을 남긴 일본의 전설적인 투수라고 합니다. 또한 1951년 부터 1964년 까지 무려 14년간 20승 이상을 기...

선발투수 연장 15회 완투 대결을 펼친 프로야구 투수들

이미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투수로서 최고의 맞대결 명승부를 펼친 선수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팬들은 영화 "퍼펙트 게임"의 두 주인공 최동원선수와 선동열선수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당시 최동원선수와 선동열선수는 연장 15회까지 완투하며 2:2 무승부를 기록하여 많은 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명승부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이외에도 다른 선수들도 양팀 선발투수 모두 연장 15회까지 완투한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연장 15회까지 선발투수들이 완투를 하며 명승부를 펼친 경기와 선수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15회 완투 무승부 맞대결은 현재까지 4번만 있었던 기록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프로야구는 분업화 및 세분화로 선발투수가 15회까지 던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진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1986년 7월 27일  차동철(해태) 0:0 김신부(청보) 첫번째 한국 프로야구 선발투수 15회 완투 맞대결은 1986년 해태와 청보와의 경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15회 무승부 완투 맞대결의 첫번째 주인공은 차동철선수와 김신부선수입니다. 프로야구에서  첫번쨰 15회 완투 무승부 맞대결이었던 이 경기는 0:0 무승부라서 그런지 경기시간은 비교적 짧았서 3시간 22분만에 끝났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차동철은 15회 10피안타 완투였으며 재일교포 출신 김신부는 15회 8피안타 완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당시에 본적이 있는데 두 선수의 투구는 정말로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두 선수의 경기는 두 선수는 모두 15회까지 실점하지 않은 완봉 무승부라는 특이한 기록입니다. 1987년 4월 19일  김진욱(OB) 1:1  선동열(해태) 프로야구 15회 선발투수 완투 맞대결의 두번째 주인공은 김진욱선수와 선동열선수입니다. 1987년 4월 19일  김진욱선수가 15회까지 3피안타로 완투, 선동열...

패전 경기 평균 방어율 0.98점을 기록한 투수 선동열

이미지
난공불락의 선동열 시대 선동열선수는 정말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투수로 아마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다른 것은 몰라도 0점대 방어율을 그렇게 쉽게(?) 기록한 선수는 아직까지도 선동열선수 이후에는 없기 때문에 그를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라 부르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선동열 "그런데 말입니다" 선동열 선수에게 정말로 개인적으로 아쉽고 놀라운 시즌이 있었으니 그 시즌은 1988년 입니다. 해태는 그해 우승을 하면서 3연패를 달성했고 개인적으로도 시즌 방어율 1.21을 기록하며 3년 연속 0점대 방어율에는 실패했지만 괜찮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1988년은 선동열에게 정말로 특이한 기록을 남긴 한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88년 패전 경기 방어율이 0.98 이었다는 것입니다. 승리한 경기가 아니고 패전 경기 방어율이 0.98 이라는 것 입니다. 정말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럼 먼저 아래의 그림에서 그해 선동열선수의 기록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88년 선동열 선수 기록 선동열선수의 1988년 기록 위의 그림에서 살펴보면 선동열선수는 1988년 총 178 1/3 이닝을 피칭하고 24 자책점을 기록하며 1.21의 방어율 을 기록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두번쨰 정리한 "패전경기" 기록을 보면 총 36 2/3 이닝을 피칭하고 4 자책점을 기록하며 패전경기 평균방어율 0.98 을 기록하게 됩니다. 시즌 평균 방어율도 아니고 시즌 승리경기 방어율도 아닌 패전...